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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변의 폐터널 탐험기

kimsin12025 2025. 5. 20. 16:48

1. 강을 따라 이어진 길, 낙동강 폐터널을 향하여

키워드: 낙동강 폐터널, 강변 탐험, 버려진 철도 구조물

낙동강은 한반도의 젖줄이라 불리는 강으로, 역사적으로도 산업적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 강을 따라 과거에는 화물과 여객을 운반하던 철도가 길게 이어져 있었으며,
산을 뚫고 만든 수많은 터널들이 지금은 기능을 멈춘 채 조용히 잊혀져 있다.

이번 도시 탐험의 목적지는 경북 구미와 김천 사이에 위치한 폐터널이었다.
1950~60년대까지는 화물열차가 지나던 실질적인 운송 노선이었지만,
신설 도로와 철도 노선 변경으로 인해 해당 구간은 폐선되었고, 터널은 그저 과거의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

우리는 낙동강 자전거길과 강변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은 그 폐터널을 직접 찾는 여정에 나섰다.
입구는 잡초와 덩굴로 거의 덮여 있었고, 안내판 하나 없이 자연과 시간의 조용한 침식만이 터널을 지키고 있었다.

 

 

낙동강변의 폐터널 탐험기

 

 

 

2. 빛이 닿지 않는 어둠, 터널 안으로의 진입

키워드: 터널 내부, 어둠 속 탐험, 도시 폐허 감성

폐터널의 입구는 무너진 옹벽과 부서진 철문으로 막혀 있었지만,
한쪽 틈을 통해 몸을 숙이고 들어갈 수 있는 좁은 통로가 남아 있었다.
조심스럽게 랜턴을 켜고 내부로 들어서자, 즉각적으로 온도와 습도가 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외부의 공기와는 전혀 다른, 축축하고 고요한 공간.

터널은 약 300미터가량 이어졌고, 내부는 물웅덩이와 부식된 철로, 갈라진 콘크리트 벽이 연속되었다.
중간쯤에서는 터널 천장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고, 그 사이로 빛 한 줄기가 들어와 어둠 속에서 단 하나의 밝은 점처럼 보였다.

터널 내부에서는 과거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전선, 조명받침대, 철제 장비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고,
그 위엔 수십 년의 시간이 쌓은 먼지와 곰팡이, 그리고 침묵이 덮여 있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정적, 오로지 우리의 발소리와 물방울 소리만이 퍼졌다.


3. 터널 벽면의 낙서와 상처들 – 사람이 남긴 흔적

키워드: 폐터널 낙서, 사람의 흔적, 시간의 기록

터널 벽면에는 놀랍게도 수많은 낙서와 메시지들이 남아 있었다.
“1992.10.03 김○○ 다녀감”, “졸업 여행 중”, “○○와 ○○는 친구” 같은 글귀부터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그림, 날짜, 이름, 심지어 시처럼 적힌 문장들도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낙서가 아니라, 시간의 단면에 기록된 이름 없는 사람들의 존재 증명이었다.
누군가는 지나가며 흔적을 남겼고, 누군가는 이곳을 잠시의 피난처나 은신처로 삼았을지도 모른다.
벽면을 따라 끝까지 이어진 글자들은 마치 이 터널이 거쳐 온 시간들을 고스란히 떠올리게 하는 타임라인처럼 느껴졌다.

그 안에는 두려움보다도 더 진한 인간적인 온기가 있었다.
우리는 손전등을 비추며 그 글자들을 조용히 읽어 내려갔고,
그 순간만큼은 이 공간에 여전히 살아 있는 ‘기억의 공기’가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4. 터널 끝, 다시 만난 바깥의 빛

키워드: 터널 출구, 외부와 내부의 경계, 폐허의 끝

터널의 끝은 예상보다 더 갑작스럽게 다가왔다.
한참을 어둠 속에서 걸은 끝에, 점점 넓어지는 출구를 지나 다시 낙동강의 바람과 햇빛이 우리를 맞이했다.
그러나 밖으로 나왔을 때의 기분은 단순한 해방감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하나의 시간을 온전히 통과해 나왔다는 감각에 가까웠다.

출구 주변에는 붕괴된 구조물과 녹슨 철로가 흩어져 있었고,
몇 걸음 옮기면 바로 활발하게 움직이는 자전거 도로와 강변길이 이어져 있었다.
과거와 현재가 한 걸음 차이로 나뉘어 있는 이 경계, 그것이 폐터널이 가진 가장 상징적인 매력이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이 강변을 걷고 달리지만,
바로 그 옆, 등 돌린 채 시간이 멈춘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터널은 그렇게, 조용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과거의 문장처럼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5. 기록하고 남긴다는 것 – 탐험자의 역할

키워드: 도시 탐험 기록, 폐허 보존, 탐험 윤리

이번 낙동강 폐터널 탐험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사라진 인프라가 도시와 인간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는지를 확인하는 여정이었다.
우리는 사진을 촬영했지만 위치는 공개하지 않았고,
모든 유물은 건드리지 않았으며, 출입 흔적조차 남기지 않으려 노력했다.

도시 탐험은 ‘발견’보다 ‘기억의 복원’이라는 철학을 가져야 하며,
특히 이러한 기록되지 않은 공간들은 사라지기 전 누군가에 의해 조용히 정리되어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 같은 기록자들의 몫이다.

낙동강변 폐터널은 이제 아무 역할도 하지 않지만,
그곳은 여전히 수많은 발걸음, 숨소리, 이름, 희망과 불안을 담은 공간이었다.
우리는 그 기억을 오늘 이 글로 남긴다.
그래서 이 터널은 사라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