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낡은 창문을 통해 본 시간

kimsin12025 2025. 6. 29. 16:46

1. 낡은 창문, 시간의 틈새를 열다


폐가를 탐방하다 보면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것은 다름 아닌 낡은 창문이다. 유리창에 금이 가고, 오래된 나무틀은 부식되어 균열이 일어난 그곳. 그 창문은 단순한 건축 구조물이 아닌, 시간의 틈새를 열어주는 매개체로 다가온다. 언젠가 누군가 이 창문을 통해 세상을 바라봤을 것이며, 해가 뜨고 지는 동안 수많은 감정과 풍경이 그 창틀을 통해 드나들었을 것이다. 실제로 낡은 창문을 들여다보는 행위는 단순한 관찰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시간의 결을 느끼는 감정적 경험에 가깝다. 투명하지 않은 유리, 먼지 낀 틈새, 그리고 바깥세상과의 경계라는 특성은 마치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마주하게 하는 창조적 장치다.

 

 

2. 기억의 프레임으로서의 폐창문


문학이나 영화에서 폐창문은 기억의 프레임 역할을 한다. 이는 단순히 외부를 보는 창이 아니라, 주인공의 내면을 투영하고, 지난 시간을 회상하는 기제로 자주 활용된다. 창문은 안과 밖을 나누는 경계이며, 그 경계 너머에 있는 것은 종종 ‘지금’이 아닌 ‘그때’이다. 낡은 창틀을 손끝으로 쓸어보면 그 위에 쌓인 먼지 속에서 오래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어떤 이는 이 창문 앞에서 이별을 했고, 또 어떤 이는 기다림을 삼켰을 것이다. 그 기억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창문이라는 시각적 장치는 인간의 무의식 속 기억을 상기시키는 촉매로 작용한다. 따라서 폐가의 창문은 단지 구조가 아닌, 과거의 서사를 끌어내는 ‘기억의 트리거’가 된다.

 

낡은 창문을 통해 본 시간

 

 

3. 광각의 침묵, 창을 통해 본 계절의 흐름


낡은 창문은 시각적 관찰의 도구이자, 자연의 흐름을 기록한 프레임이기도 하다. 창틀 안에서 바라본 계절의 변화는 눈부시게 아름답고도 서글프다. 봄날이면 푸른 잎이 드리우고, 여름엔 햇빛이 따갑게 스며들며, 가을엔 낙엽이 그 유리를 스쳐간다. 겨울엔 얼어붙은 창문 틈새로 찬바람이 스며들며, 그 틈 사이로 시간의 냉기가 밀려온다. 이 모든 풍경은 ‘그때 그 집’에 살았던 누군가의 일상이자 기억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그 누구도 바라보지 않는 창이지만, 우리는 그 앞에 서서 상상할 수 있다. 이 창을 통해 무수히 많은 날들이 지나갔다는 것을. 침묵하는 공간이지만, 시간의 층위가 시각적으로 녹아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는 매우 깊다.

 

 


4. 인물의 감정을 드러내는 창문의 메타포


이 창문은 인간의 감정 상태를 투영하는 서사적 메타포로도 작용한다. 닫힌 창문은 고립과 단절을, 열린 창문은 기대와 희망을 의미하기도 한다. 심리 소설이나 감정 중심의 서사에서는 이러한 장치가 인물의 내면을 표현하는 데 자주 사용된다. 폐가의 낡은 창문은 특히 슬픔, 외로움, 혹은 상실의 감정을 함축한다. 깨진 유리를 통해 보이는 흐릿한 풍경은 과거의 왜곡된 기억을 상징하고, 반대로 투명한 창은 아직 남은 희망의 실루엣을 드러내기도 한다. 우리는 이 창문 앞에서 서성이는 인물의 뒷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그들이 어떤 사연으로 이곳을 떠났는지, 어떤 감정을 품었는지는 모르지만, 창문의 틈 사이에서 그들의 고요한 외침이 들려오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5. 낡은 창틀의 촉각, 세월을 만지다


눈으로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폐가의 낡은 창틀을 손끝으로 느끼는 순간이 있다. 거칠고 습기 찬 나무 표면, 삐걱대는 창경의 마찰음, 유리의 이음새에 낀 먼지들. 이 모든 것은 시간을 촉각으로 체험하는 방식이 된다. 오감 중 촉각은 가장 감정에 직접적으로 연결된 감각이라, 물리적 접촉은 잊혀진 감정과 기억을 불러오는 효과가 있다. 문학적으로도 손끝에 닿은 감정은 매우 강렬하게 묘사된다. 낡은 창문은 단지 보는 것이 아니라, 만지고 듣고 느껴야 비로소 ‘읽히는 대상’이 된다. 이 촉각적 경험은 단순한 관찰 이상의 감정적 공명을 불러일으키며, 독자 혹은 관람자에게 그 장소의 역사를 보다 입체적으로 체감하게 한다.

 

 


6. 폐허 속 낡은 창문, 서사의 시발점이 되다


궁극적으로 낡은 창문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이야기의 시작점이 된다. 많은 문학 작품이나 영화 속 장면은 창문으로 시작된다. 그곳은 외부 세계와의 연결점이자, 내면 세계의 반영이다. 폐가의 낡은 창문은 ‘기억을 소환하는 트리거’, ‘감정을 투영하는 거울’, 그리고 ‘서사의 문턱’이 된다. 누군가가 그 창문을 통해 바라봤던 풍경, 그 앞에서 나눈 대화, 혹은 외로움에 잠긴 순간들 모두가 이야기의 단초가 되어 새로운 창작을 유도한다. 나 역시 한 폐가 앞에서 낡은 창문을 마주했을 때, 한 편의 이야기가 머릿속에 스며들었다. 그곳은 정지된 시간이 흐르고, 아무도 없지만 많은 존재가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이처럼 낡은 창문은 기억과 상상, 현실과 허구의 교차점에서 서사를 가능하게 만드는 중요한 장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