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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안의 버려진 등대 이야기

kimsin12025 2025. 5. 20. 08:18

 

 

남해안의 버려진 등대 이야기

 

 

1. 항로의 끝, 지도에서 사라진 등대를 찾아서

키워드: 남해안 버려진 등대, 폐등대 탐험, 해안 폐허

남해안은 수많은 어선과 선박이 드나드는 한국의 대표적인 해양 항로다.
그 바닷길을 수십 년간 지켜온 등대들은 바다의 수호자이자 항로의 길잡이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 자동화 설비 도입, 해상 교통망의 변화로 인해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등대들이 조용히 기능을 멈춘 채 버려지기 시작했다.

이번 탐험의 목적지는 남해안 외딴 섬에 위치한 폐등대였다.
지도에 표기는 되어 있지만 정기 여객선이 다니지 않고, 관리기관에서도 실질적인 유지보수를 중단한 상태였다.
소수의 어민들만 가끔 낚시를 위해 들리는 이 섬은,
등대를 제외하곤 인적이 거의 드문 고요한 장소였다.

우리는 민간 어선을 통해 섬에 도착했고,
폐쇄된 계단을 따라 바위 언덕을 올라가며 폐등대에 다가섰다.
멀리서 보면 하얀 원통형 등대는 여전히 우뚝 서 있었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페인트는 벗겨지고, 창은 깨져 있었으며, 내부는 이미 오랜 시간 멈춰 있었다.


2. 등대 내부의 정적, 시간이 멈춘 공간

키워드: 등대 내부 구조, 버려진 해양 시설, 정지된 시간

등대의 문은 녹슨 철문으로 굳게 잠겨 있었지만,
한쪽이 부서져 있는 틈으로 조심스럽게 진입할 수 있었다.
내부는 급한 경사의 나선형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벽면에는 바다의 습기와 소금기 때문에 곰팡이와 물자국이 번져 있었다.

등대 중층에는 관측장비와 간이 침대, 낡은 전등과 책상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천장 근처에는 여전히 작은 조리기구, 옷걸이, 그리고 오래된 라디오가 남아 있었다.
그 모든 것은 누군가 한동안 이곳에 머물렀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최상층 조명실은 이미 유리창이 파손되어 바람과 빛이 거세게 들어오고 있었고,
등화 장치는 먼지와 녹에 뒤덮여 있었다.
그리고 한쪽 벽에는 '2009. 3. 17 마지막 점검'이라는 펜글씨가 선명히 남아 있었다.
등대는 멈췄지만, 그 마지막 흔적은 아직 살아 있었다.


3. 외딴 바다 위, 등대지기의 흔적

키워드: 등대지기 생활, 해양 외딴 섬, 기억의 조각

버려진 등대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등대지기의 흔적이었다.
책상 위에는 한 권의 공책이 놓여 있었고, 그 안에는
파도 높이, 날씨, 입출항 상황 등을 매일같이 적은 수기 기록이 남아 있었다.
기록은 2008년부터 2009년까지 빽빽하게 이어져 있었고,
마지막 장에는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이제 이 빛은 꺼집니다. 모두 무사히 돌아가길."

우리는 그 글을 읽는 순간, 이 등대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사람이 머물고, 책임지고, 바다를 지키던 공간이었음을 실감했다.
그 작은 공간에는 고독, 사명, 그리고 반복되는 일상의 조용한 존엄성이 배어 있었다.

바다의 소금기와 바람, 그리고 고립된 환경에서의 삶이 만들어낸 고요한 비극성
폐등대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그것은 두려움이 아닌, 존경과 애도의 감정이었다.


4. 사라진 등대를 바라보며 – 기록의 책임

키워드: 폐등대 기록, 해양 유산 보존, 탐험 윤리

등대를 떠나기 전, 우리는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며 기억의 마지막 조각들을 정리했다.
낚시꾼들이 남긴 쓰레기, 바위에 박힌 녹슨 앵커,
그리고 파도 소리에 묻힌 등대의 침묵이 깊게 다가왔다.

우리는 촬영한 사진과 메모를 통해 이 공간을 기록하고자 했지만,
그 기억을 훼손하거나 왜곡하지 않기 위해 위치는 비공개로 하기로 했다.
유물은 이동시키지 않았고, 등대 내부도 그대로 두고 나왔다.

도시 탐험의 핵심은 발견이 아니라 보존,
그리고 기억을 책임감 있게 전달하는 일이다.
이 버려진 등대는 이제 꺼진 빛이지만,
그 자리에 담긴 시간은 글과 기록을 통해 다시 살아날 수 있다.

남해안의 이 작은 등대는 더 이상 항로를 비추지 않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사람이 지켜낸 공간’으로 기억될 가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