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폐가 골목에서 떠오른 어린 시절의 기억
나는 어느 늦은 오후, 오래된 동네의 좁은 골목길을 걷다가 벽돌이 무너진 작은 폐가를 마주했다. 그곳은 어릴 적 친구들과 숨바꼭질을 하던 곳과 닮아 있었다. 낡은 대문 틈으로 비치는 빛, 부서진 창문 아래 놓인 녹슨 자전거 프레임은 시간이 흘렀음을 알려주었지만, 동시에 내 안에 무언가를 건드렸다. 문득 나는, ‘어린 시절’이라는 감정의 서랍을 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폐가라는 물리적 공간은, 기억이라는 비물질적 시간대를 호출해냈고, 나는 스스로도 잊고 있었던 순간들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그날의 폐가 앞, 나는 단순한 탐험자가 아닌 과거와 조우한 감정의 행인이었다.
2. 버려진 집에서 되살아난 가족의 풍경
폐가 내부를 바라보자 벽에 어렴풋이 남아 있는 꽃무늬 벽지와 금이 간 타일이 눈에 들어왔다. 이상하게도 그 풍경은 내 유년의 집 안 거실과 겹쳐 보였다. 아직 텔레비전에서 만화가 흘러나오고, 엄마는 부엌에서 된장국을 끓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 공간에는 실제 내 과거가 존재하지 않았지만, 기억이 투영된 감각은 거짓이 아니었다. 폐허의 정적 속에서 나는 조용히 앉아,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한 저녁 시간의 소리들을 떠올렸다. 그리움이라는 감정은 현실이 아닌, 기억 속에서 더 진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 그리움은 종종 이렇게 버려진 집이라는 무대 위에서 조용히 막을 올린다.
3. 골목의 폐허와 어린 친구들의 목소리
벽 너머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했고, 오래된 수도꼭지는 여전히 한 방울씩 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어릴 적 함께 놀던 친구들의 이름이 떠올랐다. 정호, 민지, 석훈... 폐가 주변을 맴돌던 발소리, 고무줄놀이를 하며 웃던 목소리, 어른들 몰래 초콜릿을 나눠 먹던 비밀까지. 폐가라는 공간은 잊고 있던 관계들을 소환하는 마법의 거울 같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흩어졌고, 연락도 끊겼지만, 이 낡은 집 안에서는 여전히 그때 그 시절의 온도가 남아 있었다. 사람은 사라져도 기억은 벽에 남는다. 나는 그날, 폐가 한 켠에 기대어 앉아, 사라진 시간의 친구들에게 마음속으로 조용히 인사를 건넸다.
4. 어린 나를 마주하는 글쓰기의 시작
폐가 앞에 멈춰 선 나 자신은, 어쩌면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가 교차하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유년 시절을 스스로 되짚고, 기억을 정리하고자 하는 충동이 들었고, 나는 핸드폰 메모장에 조용히 몇 줄을 적기 시작했다. “이 집은 나의 것이 아니지만, 이 기억은 온전히 나의 것이다.” 글을 쓰면서 점점 감정은 구체화되었고, 그곳에 있었던 ‘어린 나’는 오늘의 ‘성장한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폐가는 단지 오래된 건축물이 아닌, 기억을 언어로 옮기게 하는 감정의 촉매제였다. 글은 치유의 언어이고, 폐허는 그 언어를 낳는 풍경이었다.
5. 기억으로 돌아가는 길, 폐가가 이끄는 감성의 힘
나는 그날 이후로 종종 그 폐가 근처를 걷는다. 문득 비가 오는 날에는 빗소리마저도 유년의 어떤 장면과 닮아 있어, 한참을 멈춰 서기도 한다. 사람들이 버린 공간이라 여기는 그 집은, 내게는 기억의 성지처럼 신성한 장소가 되었다. 이처럼 폐허는 시간을 지닌다. 그리고 그 시간은 우리가 잊고 살았던 감정과 이야기를 다시 불러온다. 어린 시절은 언제나 내 안에 있지만, 그런 기억은 어떤 감성적 자극 없이는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폐가의 벽, 낡은 바닥, 어둑한 창문 틈의 바람은 그런 자극이 되며, 나는 감정을 쓰고, 기억을 나누며, 나 자신을 다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