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도에서 사라진 공간, 폐군부대란 무엇인가
키워드: 버려진 군부대, 폐군사시설, 지도에 없는 장소
한국 전역에는 국방개혁, 병력 감축, 전략 이전 등의 이유로 사용되지 않고 방치된 군부대들이 존재한다.
이들 시설은 일반적으로 외부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으며, 대부분은 지형 특성상 외진 산간 지역이나 도심 외곽에 위치한다.
공식적으로는 ‘폐쇄된 군사시설’이지만, 일부는 행정적으로 폐지되었음에도 여전히 출입 통제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이러한 폐군부대는 과거 군사 훈련, 작전, 병영 생활의 흔적이 남아 있는 독특한 장소다.
무너진 건물과 녹슨 장비, 벗겨진 위장색 페인트와 퇴색된 훈련 구호까지,
모든 것이 멈춘 공간 속에 시간이 고여 있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번 탐험의 배경은 경기도 모처의 2000년대 초반까지 사용되던 소규모 보병부대 터였다.
현재는 철문이 사라지고 관리가 이뤄지지 않는 상태로,
현장에는 출입 통제 표지판이 있으나 사실상 방치되어 있었다.
2. 부서진 초소와 연병장 – 군사적 질서가 사라진 풍경
키워드: 폐군부대 초소, 연병장 폐허, 군사 공간 구조
입구를 지나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경계초소의 흔적이었다.
콘크리트 벽면은 균열이 생기고, 망루로 이어지는 계단은 철골만 남아 있었다.
초소 내부에는 빈 탄약 상자, 무전기 파편, 철제 선풍기와 낡은 파라솔이 흩어져 있었다.
과거 이곳에서 병사들이 경계 근무를 서며 오갔을 장면이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연병장은 잡초에 덮여 넓은 공간을 확인하기 힘들었지만,
가운데에는 훈련용 콘, 빨래줄, 쓰러진 깃대 등이 남아 있었고,
연병장 주변 건물에는 ‘필승’, ‘정예부대’ 등 군대 특유의 문구가 칠해져 있었다.
질서의 상징이었던 이 공간은 이제 규율이 사라진 풍경 속에서 시간의 흔적만 남은 채 서 있었고,
폐허가 된 연병장은 사라진 국가 시스템의 미묘한 허전함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였다.
3. 생활관 내부 – 병사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키워드: 군부대 생활관, 병영 흔적, 병사의 일상 유물
생활관은 폐허 중에서도 가장 사적인 기억이 고인 장소다.
출입문은 열린 상태였고, 내부는 군용 2단 침대 프레임 일부와 녹슨 팬, 주전자, 의류 조각 등이 흩어져 있었다.
한 벽면에는 아직도 훈련 일정표와 병사들의 이름표, 그리고 ‘○○이 힘내자’라는 낙서가 선명했다.
책장에는 군종 병사가 사용했을 법한 찬송가와 시편 인쇄물,
사물함 안에는 비누, 면도기, 반쯤 쓴 군용 다이어리가 남아 있었으며,
화장실 옆 벽에는 ‘이등병의 편지’ 악보가 손글씨로 붙어 있었다.
이 공간은 단순한 숙소가 아닌 집단적 생활과 감정, 좌절과 유대가 혼재했던 병영의 복합적 기억 공간이었다.
무너진 침상 사이를 걸을수록, 우리는 말 없이 이어졌던 하루하루의 군 생활을 조용히 느낄 수 있었다.
4. 식당과 무기고, 기능을 잃은 공간의 감각
키워드: 폐식당, 군부대 무기고, 기능 폐기된 구조물
군부대 내 식당은 가장 많은 병력이 동시에 사용하는 시설 중 하나다.
이번 탐험에서 확인된 식당은 긴 철제 식판 트레이, 전기밥솥, 냉장고 외형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주방 벽에는 아직도 ‘청결! 위생!’ 같은 구호가 남아 있었고,
한쪽에는 배식 스케줄표와 ‘잔반 줄이기’ 캠페인 포스터도 붙어 있었다.
식당 옆 건물은 간이 무기고로 사용되던 창고로 추정되며,
철제 보관함과 탄띠 흔적, 장비 설명서 일부가 발견됐다.
무기류는 모두 철수된 상태였지만, 공간 자체가 풍기는 긴장감과 통제의 흔적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처럼 기능이 사라진 공간은 새로운 감각을 만들어낸다.
지금은 아무 소리도 나지 않지만, 과거엔 군기, 명령, 발소리, 식사 시간의 소음이 가득했을 이 공간은
이제 정적과 조용한 침묵만이 울려 퍼지는 또 다른 감각의 폐허로 변모해 있었다.
5. 군 폐허 탐험의 윤리와 기록의 가치
키워드: 군사 폐허 탐험, 탐험 윤리, 기록의 의미
군부대라는 특성상, 이와 같은 폐허 탐험은 더욱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
일부 부지는 여전히 군사보호구역에 속하거나 법적 소유권 분쟁 중인 경우가 있으며,
출입 자체가 불법이 될 수 있으므로 탐험 전 위치, 소유, 관리 상태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또한 병사의 개인 정보가 담긴 물건, 기록물 등은 절대 외부에 유출하거나 소장해서는 안 되며,
모든 탐험은 사진 및 메모 중심의 기록용 탐방에 한정되어야 한다.
버려진 군부대는 단순한 흥밋거리가 아니다.
그곳은 국가라는 거대한 체계 아래에서 수많은 개인이 생활한 공간이고,
사라졌지만 분명히 존재했던 시간과 감정이 남아 있는 장소다.
우리가 그것을 기록하는 이유는, 그 시간을 기억으로 남기고 존중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도시 탐험가가 남길 수 있는 가장 윤리적이고 의미 있는 흔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