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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실험을 기록으로만 남기는 행정의 한계

kimsin22025 2026. 2. 22. 13:06

1. 기록 중심 행정과 사회 실험의 단절 구조



사회 실험은 제도 혁신을 위한 탐색 과정이다. 새로운 정책을 제한된 범위에서 시험하고 그 결과를 분석해 제도 개선으로 이어가는 것이 본래의 목적이다. 그러나 많은 실험은 종료 이후 ‘기록’으로만 남는다. 보고서는 작성되고, 예산 집행 결과는 정리되며, 내부 평가 문서도 생산된다. 문제는 이 기록이 정책 설계의 재료로 적극 활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행정은 기록을 남기는 데에는 능숙하지만, 기록을 재해석하고 구조 개선으로 연결하는 데에는 한계를 보인다. 기록은 보관되지만 순환하지 않는다. 이는 실험과 제도화 사이의 단절을 만든다. 실험은 완료된 사업으로 분류되고, 정책 설계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된다. 기록 중심 행정은 절차적 완결성을 보장하지만, 정책 축적이라는 관점에서는 부족하다. 이 구조에서는 실험의 경험이 살아 있는 자산으로 전환되지 못한다.

 

 

사회 실험을 기록으로만 남기는 행정의 한계

 



2. 형식적 평가 체계와 실질적 정책 학습 부재



사회 실험이 기록으로만 남는 또 다른 이유는 평가 체계의 형식성에 있다. 실험이 종료되면 성과 지표와 집행 내역 중심의 보고서가 작성된다. 참여 인원, 예산 사용률, 일정 준수 여부 등이 정리되지만, 구조적 원인 분석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경우가 많다. 평가가 행정 절차를 마무리하기 위한 단계로 기능하면, 학습 자료로의 전환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책 학습은 단순한 데이터 축적이 아니라, 경험을 재구성해 다음 단계에 반영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현재의 체계에서는 기록이 정책 개선으로 이어질 의무적 경로가 존재하지 않는다. 보고서는 저장되지만, 다음 정책 설계 단계에서 검토되지 않는 일이 반복된다. 형식적 평가 구조는 실험을 문서화하는 데에는 성공하지만, 정책 학습이라는 본래 목적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이로 인해 사회 실험은 살아 있는 경험이 아닌 정적 기록으로 남는다.



3. 책임 구조 모호성과 기록 소비 행정의 한계



기록 중심 행정의 한계는 책임 구조와도 연결된다. 사회 실험은 여러 부서와 기관이 협력해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종료 이후 누가 그 결과를 분석하고 후속 조치를 마련할 것인지 명확하지 않으면, 기록은 단순 보관 상태로 남는다. 책임 주체가 분명하지 않은 구조에서는 기록을 정책 개선에 활용하려는 동기도 약해진다. 이로 인해 행정은 기록을 ‘남기는 것’에 집중하고, ‘활용하는 것’에는 소극적이 된다. 이러한 소비형 기록 행정은 정책의 반복을 낳는다. 과거 실험의 교훈이 충분히 공유되지 않으면 유사한 실험이 다시 기획된다. 기록은 존재하지만 경험은 축적되지 않는다. 책임이 분산된 구조에서는 기록의 전략적 활용이 어렵다. 이는 단순한 관리 문제가 아니라, 행정 설계의 구조적 한계다.

 


4. 공론화 부재와 사회적 확산 실패의 연결



사회 실험이 기록으로만 남는 현상은 공론화 부족과도 밀접하다. 기록이 내부 문서에 머물면 시민과 전문가 집단이 이를 분석하고 토론할 기회를 갖기 어렵다. 정책 경험은 사회적 논의를 통해 확장될 때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많은 실험은 종료 후 외부와 충분히 공유되지 않는다. 보고서는 공개되더라도 이해하기 어려운 형식으로 제공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사회적 확산이 제한된다. 기록은 존재하지만 공론장에서 다뤄지지 않으면 집단 기억으로 전환되지 않는다. 사회 실험의 의미는 문서가 아니라 논의를 통해 확장된다. 공론화되지 않는 기록은 정책 문화로 자리 잡기 어렵다. 이는 실험이 사회 변화로 이어지지 못하는 또 하나의 구조적 원인이다.



5. 기록을 자산으로 전환하는 학습 행정 체계의 필요성



사회 실험을 기록으로만 남기는 행정의 한계를 극복하려면 기록을 자산으로 전환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첫째, 실험 결과를 정책 설계 단계에서 의무적으로 검토하는 절차를 제도화해야 한다. 둘째, 실패와 한계를 포함한 분석을 별도의 데이터베이스로 축적해야 한다. 셋째, 기록을 시민과 공유하고 공론장에서 논의하는 구조를 강화해야 한다.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기록을 보관하기 위해 정책을 운영하는가, 아니면 변화를 만들기 위해 운영하는가라는 질문이다. 기록이 축적과 학습으로 이어질 때 정책은 발전한다. 기록이 단순한 행정 산출물로 남는다면, 실험은 반복될 뿐 진화하지 않는다. 학습 행정으로의 전환은 기록을 살아 있는 정책 자산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그때 비로소 사회 실험은 의미 있는 제도 혁신의 기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