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회 실험 실패 기록 부재와 정책 학습 구조의 단절
사회 실험은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을 내포한다. 새로운 정책을 시험하는 과정에서는 기대와 다른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러한 실패 경험은 정책 발전의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다. 무엇이 작동하지 않았는지, 어떤 조건에서 문제가 발생했는지를 분석하면 다음 정책 설계는 더 정교해진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사회 실험의 실패가 충분히 기록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실패가 공식적으로 규정되지 않거나, 기록에서 축소되는 일이 반복된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구조적 문화의 결과다. 실패를 기록하지 않는 순간, 학습의 기회도 사라진다. 정책은 반복되지만 발전은 더뎌진다. 기록되지 않은 실패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되고, 이후 유사한 실험이 다시 등장한다. 실패를 남기지 않는 문화는 정책 축적을 차단하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다.
2. 성과 중심 행정 문화와 실패 은폐의 조직적 유인
실패가 기록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성과 중심 행정 문화다. 공공기관의 평가 체계는 대체로 성과 달성 여부를 기준으로 작동한다. 사업 목표를 달성하면 긍정적 평가를 받고, 그렇지 못하면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실패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부담이 된다. 담당자는 책임 문제와 연결될 가능성을 고려해 실패를 최소화하거나 외부 요인으로 설명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결과보고서에서도 “운영상 한계”나 “환경적 요인” 같은 표현으로 실패의 구조적 원인이 희석되는 경우가 있다. 이는 개인의 도덕성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유인의 결과다.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 위험한 선택이 되는 문화에서는 기록 또한 소극적으로 남겨진다. 이 과정에서 정책 실패는 체계적 분석 없이 사라진다. 성과 중심 문화는 성공을 강조하는 동시에 실패를 지우는 구조를 강화한다.
3. 형식적 평가 체계와 실패 분석의 축소 문제
또 다른 원인은 형식적 평가 체계다. 실험 정책이 종료되면 평가보고서가 작성되지만, 그 내용은 예산 집행과 참여 인원, 일정 관리 등 정량적 지표 중심으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실패의 구조적 원인이나 설계 한계에 대한 심층 분석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보고서는 행정 절차를 마무리하는 문서로 기능할 뿐, 정책 개선의 전략적 자료로 활용되지 않는다. 또한 실패 사례는 별도의 데이터베이스로 정리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성공 사례는 홍보 자료로 남지만, 실패 사례는 기록 속에서 묻히거나 단순한 참고 자료로 처리된다. 이러한 평가 방식은 실패를 학습 자산으로 전환하지 못한다. 실패를 기록하지 않는 문화는 단순한 은폐가 아니라, 분석의 깊이가 부족한 구조에서 비롯된다. 표면적 기록만 남고 본질적 교훈은 축적되지 않는 것이다.

4. 책임 회피 구조와 실패 공유 부재의 반복 메커니즘
실패를 기록하지 않는 문화는 책임 회피 구조와도 밀접하다. 사회 실험은 여러 기관과 부서가 협력해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실패가 발생하면 책임 소재가 분산된다. 명확한 책임 주체가 없으면 실패를 적극적으로 정리하고 기록하려는 동기도 약해진다. 오히려 조용히 종료하는 것이 부담을 줄이는 선택이 된다. 이러한 구조는 실패 공유를 방해한다. 실패가 공식적으로 논의되지 않으면 조직 내부에서도 교훈이 확산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유사한 설계가 반복된다. 실패 기록의 부재는 단순한 정보 부족이 아니라, 반복 실패를 강화하는 메커니즘이다. 기록되지 않은 실패는 구조적 개선을 어렵게 만든다. 이는 장기적으로 정책 신뢰와 효율성을 동시에 약화시킨다.
5. 공론장 부재와 실패 경험의 사회적 단절
사회 실험의 실패가 기록되지 않는 문화는 공론장과도 연결된다. 실패 사례가 충분히 공개되지 않으면 시민과 전문가 집단이 이를 분석하고 토론할 기회도 사라진다. 공론장이 형성되지 않으면 정책 개선 방향 역시 제한된다. 실패 경험은 사회적 자산이 될 수 있지만, 공개되지 않으면 개인적 기억으로만 남는다. 이는 정책 발전의 속도를 늦춘다. 투명한 실패 기록은 오히려 신뢰를 강화할 수 있다. 정부가 문제를 인정하고 개선하려는 모습을 보일 때 시민은 제도에 대한 신뢰를 형성한다. 그러나 실패가 사라지면 정책은 반복적 실험으로 인식된다. 공론장 부재는 실패 기록 부재와 결합해 학습 구조를 더욱 약화시킨다.
6. 실패 기록 문화 정착과 학습 행정 전환의 필요성
사회 실험의 실패를 기록하지 않는 문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구조적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실패 사례를 별도로 정리하고 공개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둘째, 평가 체계를 개선해 구조적 원인 분석을 강화해야 한다. 셋째, 실패 공유를 장려하는 조직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실패를 처벌의 근거가 아니라 개선의 자원으로 인식하는 전환이 필요하다.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실패를 숨기기 위해 정책을 운영하는가, 아니면 실패를 통해 발전하기 위해 정책을 운영하는가라는 질문이다. 후자를 선택할 때 정책은 반복에서 벗어나 축적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실패를 기록하는 문화는 정책 혁신의 출발점이다. 기록된 실패는 사라지지 않고, 다음 제도의 기초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