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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범사업의 성과가 사라지는 행정 기록의 구조

kimsin22025 2026. 2. 2. 07:09

 

시범사업의 성과가 사라지는 행정 기록의 구조

 

 

 

 

 

1. 시범사업 성과 기록의 필요성과 행정 아카이브의 본래 기능



시범사업은 새로운 정책을 전면 도입하기 전에 효과와 한계를 검증하기 위한 시험 단계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제한된 범위에서 제도를 운영하며 실제 현장에서 발생하는 변화를 관찰하고, 이를 토대로 제도화 여부를 판단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성과 기록’이다. 무엇이 개선되었고, 어떤 문제가 발생했으며, 어떠한 조건에서 효과가 나타났는지를 체계적으로 남겨야 다음 정책 설계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행정 기록은 단순한 문서 보관이 아니라 정책 학습을 가능하게 하는 아카이브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기록은 과거 경험을 현재 의사결정에 연결하는 통로이며,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돕는 안전장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많은 시범사업의 성과가 기록으로 남아 있음에도 실제 정책 과정에서는 거의 활용되지 않는다. 문서는 존재하지만 정책 자산으로 기능하지 못한다. 이는 기록 체계가 본래 의도와 달리 단순한 ‘행정 절차’로만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범사업의 성과가 사라지는 이유는 기록이 없어서가 아니라, 기록이 제대로 활용되지 않는 구조에 있다.



2. 형식적 문서화 중심 행정 기록 구조와 정보 고립 문제



시범사업 성과가 사라지는 첫 번째 원인은 형식적 문서화 중심의 행정 기록 구조다. 대부분의 시범사업은 종료 시점에 결과보고서, 정산서, 평가표 등을 작성한다. 표면적으로 보면 기록 체계는 충분해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문서들은 대개 내부 결재와 감사 대응을 위한 형식적 자료에 가깝다. 복잡한 행정 용어와 통계 수치 위주로 구성되어 있어 외부에서 이해하기 어렵고, 정책 담당자가 아닌 사람에게는 접근성이 낮다. 또한 문서가 특정 부서 서버나 내부 시스템에만 저장되는 경우가 많아 다른 기관이나 부서가 참고하기 쉽지 않다. 이로 인해 정보는 존재하지만 고립된다. 기록이 공유되지 않으면 지식은 축적되지 않는다. 행정 내부에서도 담당자가 바뀌면 이전 사업의 내용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결국 기록은 살아 있는 정책 자산이 아니라 단순한 보관 파일로 전락한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아무리 많은 성과가 축적되어도 실제 정책 개선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3. 성과 축적 단절과 조직 기억 상실의 반복 패턴



행정 기록 구조의 또 다른 문제는 성과 축적이 조직 차원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범사업은 보통 한시 조직이나 프로젝트 팀이 담당한다. 사업이 종료되면 팀은 해체되고 담당자는 다른 업무로 이동한다. 이때 기록은 문서 형태로만 남고, 경험과 노하우는 사람과 함께 사라진다. 조직 차원의 ‘기억’이 형성되지 않는 것이다. 정책 성과가 데이터베이스나 지식 체계로 구조화되지 않으면 다음 담당자는 처음부터 다시 사업을 설계해야 한다. 과거에 어떤 시도가 있었는지, 무엇이 실패했는지 알지 못한 채 유사한 실험을 반복한다. 이는 행정 효율성을 크게 떨어뜨린다. 성과가 축적되지 않는 구조에서는 실험이 많을수록 오히려 낭비가 커진다. 결국 시범사업은 학습을 위한 과정이 아니라 소모성 이벤트처럼 소비된다. 조직 기억 상실이 반복되면서 성과는 기록 속에만 남고 실제 정책에는 반영되지 않는다.

 


4. 행정 기록 활용 체계 전환과 정책 자산화의 개선 과제



시범사업의 성과가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는 기록 체계의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단순히 문서를 작성하는 것을 넘어, 기록을 정책 자산으로 활용하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평가 결과는 이해하기 쉬운 요약본과 함께 공개되어야 하며, 다른 부서와 기관이 참고할 수 있는 통합 데이터베이스로 축적되어야 한다. 또한 시범사업 종료 이후 반드시 성과 분석 회의와 후속 정책 반영 절차를 거치도록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기록은 보관이 아니라 활용을 전제로 설계되어야 한다. 성공 사례와 실패 사례가 모두 공유될 때 행정은 점진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기록을 남기기 위해 시범사업을 하는가, 아니면 기록을 활용하기 위해 시범사업을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앞으로도 많은 시범사업의 성과는 행정 문서 속에서만 존재하고 실제 정책 변화로 이어지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