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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처럼 담아낸 폐허 사진집 제작기

kimsin12025 2025. 7. 4. 16:10

1. 폐허의 감성을 담다: 사진집 기획의 출발점


‘폐허’라는 단어가 주는 감정은 낡고 버려졌다는 의미 이상이다. 그것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머물러 있는 어떤 기억의 공간이며, 감정을 되새기는 내면의 풍경이기도 하다. 이번 사진집은 그런 폐허의 감성을 시적인 이미지로 표현하고자 기획되었다. 단순한 기록 사진이 아닌, 한 장의 이미지에서 한 편의 시가 떠오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이를 위해 사진집의 제목부터 구성까지 시의 형식을 따라가되, 시와 사진이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로 만드는 것이 핵심 과제였다. 폐허를 찍는다는 것은 그 공간에 깃들어 있던 시간, 사람, 침묵을 함께 찍는 것이고, 이 작업의 시작은 바로 그 ‘무형의 감정’을 시처럼 포착하는 데 있었다.

 

 


2. 폐허의 시적 순간 포착: 촬영 기법과 현장 접근


폐허는 빛이 사라진 공간이자, 동시에 미묘한 빛이 살아 있는 공간이다. 사진집 제작을 위한 촬영에서는 이 점을 최대한 활용했다. 시적 분위기 연출을 위한 폐허 촬영 기법은 무엇보다도 자연광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이른 아침 안개 속에서 촬영한 유리창 너머의 방, 해 질 무렵 주황빛이 스며드는 골목길의 벽, 무너진 천장을 통해 들어온 한 줄기 햇빛이 먼지를 일으키며 흐르는 장면 등은 시적인 긴장감과 고요함을 동시에 전달한다. 카메라는 늘 정적인 구도 안에서 감정을 머금는 방향으로 조율되었고, 셔터 속도나 조리개 값보다 중요한 것은 ‘그 순간에 있었던 침묵’이었다. 시처럼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감각보다는 감정을 따라가는 여정이었다.

 

시처럼 담아낸 폐허 사진집 제작기

 

 

3. 구성의 미학: 사진집 편집과 시문 삽입


사진집은 단순히 이미지의 나열이 아니라, 의도된 서사와 감성의 흐름이 있어야 한다. 첫 장을 펼치면 어두운 복도의 사진과 함께 “시간은 여기 멈췄다”는 한 줄의 문장이 시작을 알린다. 이후에도 각 사진에는 짧은 시구를 붙였다. 이 시는 직접 쓴 것도 있고, 국내외 고전 시인의 문장을 인용한 것도 있다. 중요한 건, 사진과 시가 서로를 해치지 않고 공명하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벽지가 뜯어진 방의 사진 아래에는 “기억은 벽 뒤에 숨었다”는 문장이, 먼지 낀 유리창 너머의 복도 사진에는 “눈물은 창밖에서 다시 온다”는 시구가 붙었다. 편집 과정은 문장과 이미지의 호흡을 맞추는 작업이었고, 페이지 순서 하나에도 치열한 고민이 담겼다. 이것은 하나의 서정적 서사 구조였다.

 

 


4. 시처럼 느끼게 하기 위한 인쇄와 디자인


폐허 사진집의 완성도는 인쇄 품질과 디자인에 의해 좌우된다. 이번 작업에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종이 질감과 톤의 일치였다. 광택지 대신 무광지와 질감 있는 수입지를 선택하여, 보는 이가 사진 속 먼지와 벽의 거칠음을 손끝으로 느끼게 만들었다. 인쇄 색상도 과하게 보정하지 않고 실제 채광에 가깝게, 낮은 채도로 감정을 눌렀다. 표지 역시 지나치게 화려한 타이포를 배제하고, 흑백의 잔잔한 배경 위에 손글씨로 된 제목을 얹었다. 이러한 선택은 모두 시처럼, 조용히 말 거는 인상을 주기 위함이었다. 사진집을 펼치는 그 순간부터, 독자는 폐허 속의 침묵에 천천히 스며들고, 그 안에서 각자의 기억과 감정을 꺼내게 되는 몰입형 체험을 하게 된다.

 

 


5. 기록 그 너머: 사진집이 남긴 울림


사진집은 하나의 결과물이지만, 그 작업 과정은 결국 폐허를 통해 나를 들여다보는 여정이었다. 수많은 폐허 속에서 마주한 낡은 문, 무너진 계단, 비어 있는 싱크대, 쓰러진 의자는 모두 어떤 서사를 지니고 있었고, 사진을 찍는다는 건 그 서사를 잠시 빌리는 일이었다. 사진집을 본 독자들이 남긴 피드백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은 “사진 한 장이 내 기억을 건드렸다”는 말이었다. 이것이 시처럼 만든 폐허 사진집의 목적이었다. 문장 없이도 시가 될 수 있는 사진, 공간을 넘어 감정의 진동을 남기는 책. 그것이 지금 이 작업이 가지는 의미이며, 폐허라는 존재가 우리에게 여전히 시처럼 머물 수 있다는 증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