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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가 앞에서 멈춘 나의 감정

kimsin12025 2025. 6. 27. 18:30

1. 폐가 앞의 정적, 감정의 정지


폐가는 도시 속 어디에나 있을 수 있지만, 내가 마주한 그 집은 유독 다르게 느껴졌다. 삐걱이는 철문 너머, 먼지 낀 창문 사이로 보이는 실루엣은 이미 한 생의 마무리를 암시하고 있었다. 그 앞에서 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단순한 호기심이나 스릴을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폐가는 내 감정의 멈춤점이자,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기 위한 문턱처럼 느껴졌다. 벽의 균열, 마당의 잡초 하나하나가 마치 나의 과거와 감정을 상징하는 듯했다. 외면하고 있었던 감정들—두려움, 상실, 외로움—이 그 앞에서 말없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2. 기억의 소환, 낡은 벽이 부른 과거


폐가를 보고 있자니 어릴 적 살던 외할머니 댁이 떠올랐다. 오래된 창틀, 누렇게 바랜 벽지, 그리고 비 오는 날의 냄새까지. 그 감각은 실제와 허구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과거의 기억을 소환하는 감정의 통로가 되었다. 폐가는 단순히 남겨진 공간이 아니라, 남겨진 시간이었다. 문득 창문 아래에 쭈그려 앉아 누군가 울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떠올랐다. 그 상상이 곧 내 기억과 겹쳐졌고, 어느새 나는 그 폐허의 벽 앞에서 나 자신의 과거를 끄집어내고 있었다. 기억은 낡고 흔들리지만, 그 안엔 여전히 내 감정이 살아 있었다.

 

 


3. 폐허의 풍경, 감정의 투사


폐가를 마주한 나의 눈은 주변 풍경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담벼락에 잔뜩 자란 이끼, 유리창을 타고 흐른 빗물 자국, 반쯤 열린 대문은 내면의 감정이 외부 풍경에 투영되는 장면 같았다. 무너진 천장을 보며 나 자신의 지친 정신을 떠올렸고, 비어 있는 거실은 허전한 마음속 공간처럼 느껴졌다. 도시의 소음에서 벗어나 조용한 폐가 앞에 서자, 내 감정은 보다 명료해졌다. 슬픔은 선명해지고, 고요는 더 깊어졌다. 결국 나는 폐허를 바라보며 내 감정을 읽기 시작했고, 그것은 단순한 관찰을 넘어 감정의 반영이자 사유의 거울이었다.

 

폐가 앞에서 멈춘 나의 감정

 

 

4. 두려움 너머, 서정으로 가는 감정의 곡선


처음에는 무서웠다. 폐허는 언제나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누군가 있을 것 같고, 어딘가에서 소리가 날 것만 같고, 혹은 그 안에 과거가 너무 많이 남아있을 것만 같아서. 그러나 그 감정은 곧 변했다. 폐가 안의 고요함은 어느 순간 두려움을 서정으로 바꾸는 감정의 곡선을 만들었다. 공포는 곧 그리움이 되었고, 어둠은 오히려 안정을 주었다. 그 안에 남겨진 유리컵 하나, 다 쓰러져가는 책장, 구겨진 종이들에서 나는 누군가의 존재를 느꼈고, 그것이 나와 연결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는 폐허가 아닌, 삶의 연장선 위에 나를 놓고 있었다.

 

 


5. 사라진 시간 속에서 나를 마주하다


폐가는 침묵 속에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내가 그 앞에서 느낀 감정은 단순한 정서의 흐름이 아닌,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이었다. 그 집에는 누군가 살았고, 웃었고, 울었으며, 결국 떠났다. 마치 인생의 축소판 같다. 그러한 삶의 흔적 앞에서 나는 내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지금 내가 놓치고 있는 것, 외면한 것, 미루고 있는 것들이 폐허의 장면을 통해 선명하게 떠올랐다. 결국 폐허는 죽은 공간이 아니라, 잊고 있던 ‘나’를 꺼내 주는 장소였다. 그리고 그 ‘나’는 지금까지의 어떤 나보다도 더 진실되고 명확했다.

 

 


6. 폐허 앞의 멈춤, 새로운 감정의 시작


그날 이후, 나는 다시 폐허를 떠올릴 때마다 내 감정이 멈췄던 그 순간을 떠올린다. 그러나 멈춤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감정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음을 깨달았다. 폐허 앞에서 멈춘 감정은, 오히려 새로운 감정의 시작점이 되었다. 두려움은 용기로, 슬픔은 이해로, 고독은 공감으로 천천히 전환되었다. 이 모든 감정의 변환은 그 낡은 폐가 앞에서 시작된 것이다. 우리가 감정을 숨기고 지나치는 세상에서, 그 감정을 멈추고 직면하게 한 그 공간은 나에게 있어 어떤 상담자보다도 깊은 위로를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