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회 실험 실패 기록의 의미와 행정 책임성의 출발점
정부가 추진하는 사회 실험은 성공 사례뿐 아니라 실패 경험 역시 중요한 정책 자산이 된다. 실험의 본래 목적은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고, 그 과정에서 얻은 교훈을 다음 정책 설계에 활용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때 실패는 단순한 부정적 결과가 아니라 학습을 위한 핵심 정보다. 어떤 조건에서 정책이 효과를 내지 못했는지, 대상 설정이나 운영 방식에 어떤 한계가 있었는지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는 실패 기록이 충분히 축적될수록 정책 설계의 정교함은 높아져야 한다. 그러나 실제 행정 현장에서 실패는 적극적으로 드러내기 어려운 요소로 취급된다. 성과 중심 평가 체계와 정치적 부담 속에서 실패는 ‘설명해야 할 문제’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정부의 사회 실험은 실패를 학습 자산으로 기록하기보다, 최소화하거나 축소하는 방식으로 처리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실패 기록 방식은 곧 행정의 책임성과 투명성을 보여주는 지표이며, 정책 발전 수준을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2. 형식적 보고서 중심 실패 기록과 통계 축소 패턴
정부 사회 실험에서 가장 흔한 실패 기록 방식은 형식적 보고서 처리다. 실험이 종료되면 담당 부서는 평가 보고서를 작성하지만, 이 문서는 대개 활동 내역과 예산 집행 결과를 정리하는 데 집중한다. 목표 대비 참여율, 집행률, 만족도 점수 같은 수치가 중심이 되며, 부정적 결과는 통계적으로 축소되거나 간단한 문장으로 정리된다. 예를 들어 ‘참여율 저조’, ‘운영상 일부 한계 존재’, ‘추가 검토 필요’와 같은 표현으로 실패가 완곡하게 기술된다. 실패 원인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기보다는 모호한 표현으로 마무리되는 것이다. 이러한 기록 방식은 행정 절차를 완료하는 데에는 충분하지만, 실제 정책 학습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 실패했는지 명확하지 않으면 다음 정책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실패는 기록되지만, 실질적 의미는 제거된 채 ‘문서상의 표현’으로만 남는다. 이는 실패를 드러내기보다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축소하려는 행정 문화의 반영이다.
3. 조직 보호 문화와 실패 은폐의 행정 심리 구조
실패 기록이 소극적으로 이루어지는 배경에는 조직 보호 문화가 자리하고 있다. 공공기관은 성과 평가와 감사, 예산 심사 등 다양한 외부 검증을 받는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실패가 조직의 무능력이나 책임 문제로 해석될 수 있다. 담당 부서와 공무원 입장에서는 실패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실패를 적극적으로 분석하기보다는 최소한의 수준으로 정리하거나 성공 사례 중심으로 보고서를 구성하려는 경향이 생긴다. 이는 일종의 행정 심리적 방어 기제다. 문제를 인정하면 책임이 발생하지만, 모호하게 처리하면 부담이 줄어든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는 장기적으로 조직 발전을 저해한다. 실패를 숨길수록 학습 기회는 줄어들고, 동일한 실수가 반복된다. 결국 조직 보호를 위해 선택한 방식이 정책 품질을 떨어뜨리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는다.
4. 공개 부족과 공론장 단절이 만드는 실패 학습 부재
또 다른 문제는 실패 기록이 외부로 충분히 공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많은 평가 보고서는 내부 문서로만 보관되거나 제한적으로 공개된다. 시민과 연구자, 다른 기관이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에 실패 경험이 사회 전체의 학습 자산으로 활용되지 못한다. 만약 특정 실험이 효과를 내지 못했다면, 그 원인과 교훈이 공유되어야 다른 지역에서 같은 실수를 피할 수 있다. 그러나 정보가 내부에 머무르면 동일한 실험이 다른 이름으로 반복된다. 이는 행정 자원의 낭비이자 정책 효율성 저하다. 실패를 공개하지 않는 구조에서는 정책 논의도 제한된다. 성공 사례만 홍보되고 실패 사례는 조용히 사라지면 정책은 왜곡된 모습으로 인식된다. 공론장이 형성되지 않으면 정책 발전도 이루어지기 어렵다. 결국 실패 기록의 비공개는 단순한 정보 관리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학습 기회를 차단하는 구조적 장애물이다.
5. 실패 기록을 정책 자산으로 전환하기 위한 제도적 개선 과제
정부 사회 실험이 진정한 학습 과정이 되기 위해서는 실패 기록 방식의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 실패를 숨겨야 할 문제가 아니라 공유해야 할 자산으로 인식하는 문화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평가 보고서는 형식적 통계 정리를 넘어 원인 분석과 개선 방향 제시까지 포함해야 하며,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공개되어야 한다. 또한 실패 사례를 체계적으로 축적하고 다른 정책 설계에 활용하는 데이터베이스 구축도 필요하다. 실패를 인정하고 분석하는 행정은 단기적으로는 부담이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정책 품질과 신뢰를 동시에 높인다.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실패를 감추기 위해 기록하는가, 아니면 더 나은 정책을 만들기 위해 기록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정부 사회 실험은 앞으로도 같은 실패를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