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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실험을 둘러싼 책임 회피 구조

kimsin22025 2026. 2. 13. 17:27

1. 사회 실험 책임 구조의 필요성과 정책 실험의 본래 의미



사회 실험은 본질적으로 ‘위험을 감수하는 정책 시도’다. 새로운 복지 제도나 노동 정책, 교육 방식, 공공 서비스 모델을 제한된 범위에서 시험하는 이유는 기존 체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실험이라는 말 자체에는 항상 불확실성이 내포되어 있다. 성공 가능성도 있지만 실패 가능성 역시 존재한다. 그래서 실험 정책에는 반드시 책임 구조가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 누가 기획했고, 누가 운영했으며, 어떤 결과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평가받는지가 명확해야 학습이 가능하다. 실패가 발생하더라도 원인을 분석하고 교훈을 축적해야 다음 단계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의 행정 시스템에서는 이러한 책임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책임을 명확히 하기보다 흐릿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설계되는 경우가 많다. 실험이 성공하면 여러 기관이 성과를 공유하지만, 실패하면 누구도 주체가 되지 않는다. 그 결과 실험은 학습의 기회가 아니라 책임 회피의 수단으로 변질된다. 이는 정책 발전을 가로막는 중요한 구조적 문제다.

 


2. 한시적 시범사업 설계와 ‘임시 업무화’가 만드는 책임 분산



사회 실험에서 책임이 흐려지는 첫 번째 이유는 대부분의 사업이 한시적 시범사업 형태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시범사업은 일정 기간만 운영되는 임시 프로젝트로 간주된다. 예산도 단년도 편성이고, 담당 조직도 태스크포스나 임시 전담팀으로 구성된다. 이런 구조에서는 애초에 장기적 책임 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사업이 종료되면 조직이 해체되고 담당자는 다른 부서로 이동한다. 결과적으로 ‘누가 끝까지 책임지는가’라는 질문에 명확한 답이 없다. 실패가 발생해도 “시범 단계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설명으로 정리된다. 실험이라는 명분이 면책 장치로 작동하는 셈이다. 이는 구조적으로 책임을 분산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임시 업무로 취급되는 순간 사업은 조직의 핵심 과제가 아니라 부수적 과제로 밀려난다. 이렇게 되면 정책 결과에 대한 진지한 평가와 책임 의식도 약화된다. 결국 실험은 ‘해봐도 그만, 안 돼도 그만’인 사업처럼 인식되고, 책임 구조는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사회 실험을 둘러싼 책임 회피 구조

 

 



3. 다기관 협업 구조와 권한·책임 불일치의 행정적 모호성



두 번째 원인은 다기관 협업 구조에서 발생한다. 많은 실험 정책은 중앙정부, 지방자치단체, 산하기관, 민간 위탁 기관 등이 함께 참여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표면적으로는 협력이지만 실제로는 권한과 책임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예산은 중앙이 지원하고, 운영은 지자체가 맡고, 실무는 위탁 기관이 수행하는 식이다. 이 경우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 소재를 명확히 가리기 어렵다. 중앙은 “집행은 지자체 소관”이라고 말하고, 지자체는 “예산과 지침은 중앙에서 내려왔다”고 주장한다. 위탁 기관은 “지시대로 수행했을 뿐”이라고 답한다. 결국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권한은 나뉘어 있지만 책임은 분산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행정적 모호성은 실험 실패를 분석하고 개선하는 과정을 방해한다. 책임이 명확해야 학습이 가능하지만, 책임이 흩어지면 교훈도 사라진다. 협업이라는 명목 아래 책임 공백이 만들어지는 것이 현대 행정의 대표적 한계다.

 


4. 성과 중심 평가 체계와 실패 은폐 문화의 조직 심리



세 번째 이유는 조직 문화에 있다. 공공기관의 평가 체계는 대체로 ‘성과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성공 사례는 보고서와 보도자료로 적극 홍보되지만, 실패 사례는 부정적 기록으로 남는다. 담당자 입장에서는 실패를 솔직하게 공개할수록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자연스럽게 실패는 축소되거나 숨겨진다. 사업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도 ‘성과 일부 달성’ 같은 모호한 표현으로 정리된다. 이러한 문화 속에서는 누구도 책임을 자발적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책임을 인정하는 순간 인사 평가, 예산 배정, 조직 신뢰도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실패는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일이 되고, 정책 학습의 기회도 사라진다. 책임 회피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가 만든 합리적 선택이 된다. 조직이 실패를 처벌 대상으로 보는 한, 책임 있는 보고와 분석은 기대하기 어렵다.



5. 책임 부재가 초래하는 반복 실험과 정책 비효율 악순환



이러한 책임 회피 구조는 정책 운영에 심각한 비효율을 낳는다. 실패 원인이 명확히 분석되지 않으면 동일한 문제가 반복된다. 과거 실험에서 드러난 한계가 개선되지 않은 채 다른 지역이나 다른 이름의 사업으로 다시 등장한다. 예산과 인력이 계속 소모되지만 정책 품질은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 이는 명백한 사회적 손실이다. 또한 시민 입장에서는 정부 정책이 즉흥적이고 무책임하게 느껴진다. 실험이 끝나도 결과 설명이나 책임 있는 평가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정책에 대한 신뢰도도 하락한다. 책임이 없는 실험은 학습 없는 반복을 낳고, 반복은 다시 실패를 낳는다. 이는 악순환 구조다. 실험이 많아질수록 발전이 아니라 피로감이 쌓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책임 구조가 없는 행정 시스템에서는 어떤 실험도 진정한 혁신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6. 책임 명확화와 학습 행정 전환을 위한 구조 개선 방향



사회 실험이 진정한 정책 혁신 도구가 되기 위해서는 책임 구조를 명확히 재설계해야 한다. 누가 기획하고, 누가 집행하며, 누가 결과에 대해 평가받는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실험 단계부터 제도화 또는 종료 이후 조치까지 책임 주체를 명시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또한 실패를 처벌이 아닌 학습 기회로 인식하는 문화 전환도 중요하다. 실패 사례를 공개하고, 원인을 분석하며, 개선 방안을 공유할 때 실험은 비로소 자산이 된다.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책임 없는 실험을 계속 반복할 것인가, 아니면 책임 있는 학습을 통해 정책을 발전시킬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후자를 선택할 때만 사회 실험은 소모성 이벤트가 아니라 제도 혁신의 출발점이 된다. 결국 책임을 회피하는 행정은 발전할 수 없고, 책임을 명확히 하는 행정만이 지속 가능한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