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범사업 종료 이후 정책 공백의 구조
시범사업은 정책 도입 전 단계에서 효과를 검증하기 위한 장치다. 제한된 범위에서 운영하며 제도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확인한다. 그러나 문제는 시범사업이 종료된 이후의 단계에 있다. 사업이 끝나는 순간 관심은 급격히 줄어들고, 결과는 내부 보고서로 정리된 채 행정 기록 속으로 들어간다. 이후 그 정책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확대되었는지, 폐기되었는지에 대한 지속적 질문은 거의 제기되지 않는다. 정책은 공식적으로 실패로 분류되지도, 성공으로 확정되지도 않은 채 애매한 상태로 남는다. 이 공백은 단순한 무관심이 아니라 구조적 설계 문제다. 시범사업 이후의 후속 관리 체계가 제도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정책의 운명은 명확히 규정되지 않는다. 종료는 존재하지만 결론은 없다. 이처럼 시범사업 이후의 정책 공백은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2. 책임 주체 부재와 정책 운명 불투명성
시범사업 이후 정책의 운명이 묻히는 이유 중 하나는 책임 주체의 모호성이다. 실험 단계에서는 담당 부서와 사업 책임자가 존재하지만, 종료 이후 누가 그 결과를 정리하고 향후 방향을 결정하는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여러 기관이 협력한 사업일수록 책임 구조는 분산된다. 결과적으로 후속 조치를 명확히 발표하지 않은 채 조용히 종료되는 사례가 발생한다. 책임이 분명하지 않으면 정책의 향방도 불투명해진다. 시민과 전문가 집단이 결과를 묻지 않는 것이 아니라, 물어야 할 대상이 명확하지 않은 구조다. 이러한 구조는 정책의 운명을 불확실하게 만든다. 책임 구조가 명확하지 않은 시스템에서는 정책이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이는 실패 은폐와도 연결되지만, 동시에 구조적 설계의 문제이기도 하다.
3. 공론장 단절과 정책 기억의 소멸
시범사업이 종료된 이후 공론장에서 논의가 이어지지 않는 것도 중요한 원인이다. 정책이 발표될 때는 언론과 관심이 집중되지만, 종료 이후의 결과 분석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다. 공론장은 새로운 이슈에 빠르게 반응하지만 장기적 추적에는 취약하다. 행정 역시 종료 후 적극적인 설명 전략을 마련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정책은 사회적 기억으로 남지 못한다. 기억되지 않는 정책은 평가되지 않고, 평가되지 않는 정책은 발전하지 않는다. 공론장이 단절되면 정책의 운명은 내부 문서로만 존재한다. 사회적 토론이 이어지지 않으면 실험의 의미도 축적되지 않는다. 이는 정책이 제도 혁신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또 하나의 구조적 이유다.

4. 제도화 경로 부재와 시범사업 반복 구조
시범사업 이후 정책이 사라지는 근본적 원인은 제도화 경로의 부재다. 실험은 설계되어 있지만, 그 결과를 법적·재정적 기반으로 연결하는 절차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법 개정과 예산 확보는 별도의 정치적·행정적 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이 준비되지 않으면 실험은 종료와 동시에 중단된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가 반복된다는 점이다. 유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시범사업이 기획되고, 다시 종료된다. 이전 실험의 교훈은 충분히 활용되지 않는다. 시범사업은 많지만 제도화는 드물다. 이 반복 구조 속에서 정책의 운명은 늘 불확실한 상태로 남는다. 제도화 경로가 설계되지 않은 실험은 구조적으로 소멸할 가능성이 높다.
5. 평가 결과 미공개와 정책 축적 실패
시범사업 이후 아무도 묻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평가 결과의 미공개 또는 난해한 공개 방식이다. 보고서는 작성되지만 일반 시민이 접근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형태로 제공되는 경우가 많다. 실패 사례는 특히 적극적으로 공유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정책의 운명은 내부 기록으로만 남는다. 축적은 공개와 공유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평가 결과가 사회적으로 확산되지 않으면, 정책 경험은 다음 단계로 이어지지 않는다. 축적 실패는 반복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인다. 정책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기억되지 않는 것이다. 기억되지 않는 정책은 다시 질문받지 않는다. 이는 행정 시스템이 정책을 ‘완료된 업무’로만 처리하는 구조에서 비롯된다.
6. 정책 운명을 묻는 구조적 장치의 필요성
시범사업 이후 정책의 운명이 묻히지 않기 위해서는 후속 관리 구조가 필요하다. 첫째, 실험 종료 후 일정 기간 내에 결과와 향후 방향을 공식적으로 발표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둘째, 제도화 여부를 공개적으로 설명하는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셋째, 평가 결과를 정책 설계 단계에서 의무적으로 검토하는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실험을 끝내기 위해 시범사업을 운영하는가, 아니면 제도를 만들기 위해 운영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정책의 운명이 명확히 설명될 때 시민 신뢰도 강화된다. 묻지 않는 문화는 정책을 소멸시키고, 묻는 구조는 정책을 발전시킨다. 시범사업 이후의 단계가 제도화될 때, 비로소 실험은 의미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