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폐허 공간에서 시인이 찾은 창작의 근원시인은 말 없는 장소에서 가장 많은 이야기를 듣는 이들이다. 그 중에서도 ‘폐허’는 시인에게 있어 창작의 깊은 원천이 되는 공간이었다. 사람의 손길이 떠난 자리, 시간의 퇴적이 층층이 쌓인 그곳은 단순한 폐가가 아니라 기억과 감정이 응결된 감성의 저장고로 기능했다. 윤동주가 연희전문 시절 자주 찾았던 북악산 자락의 낡은 기와집 터, 김수영이 걸었던 서울 변두리의 철거 예정지, 고은이 시를 썼던 폐절은 단순한 배경이 아닌 정서적 실체였다. 시인들에게 폐허는 거주지가 아닌 사유의 공간이며, 도시의 소음이 차단된 진실한 자아 탐색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현대의 창작자들이 스튜디오를 찾듯, 옛 시인들은 허물어진 담벼락 사이에서 언어의 뿌리를 찾았다. 2. 시와 폐허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