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폐가 벽의 낙서, 무명의 기록자들이 남긴 흔적폐가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것은 무너진 벽이나 깨어진 창이 아니다. 오히려 누군가 남긴 작은 낙서가 공간의 분위기를 압도하는 경우가 많다. “다녀갔다”, “사랑했다”, 혹은 이름과 날짜만 적힌 짧은 문장들은 의외로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 벽면의 글귀들은 명확한 저자가 없는 채로 존재하지만, 기억의 조각으로서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킨다. 글씨는 종종 급하게 휘갈겨져 있거나, 정성껏 새겨진 형태로 남아 있다. 이 낙서들은 누군가의 방문의 흔적일 뿐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공간에 각인시키려는 무의식적 행위이기도 하다. 벽은 종이보다 오래 남는 기억의 캔버스이며, 그 위에 쓰인 문장 하나가 그 집의 역사와 겹쳐지면서 의미를 가진다. 2. 시간..